김지민군-_-이 쓴 글입니다. 저는 색깔 살릴려고
태그 최대한 퍼왔으니 알아서들 퍼가시지요.
참고로 이 글은 원본에서 바로 옮겨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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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지민
제목: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주십시오
<!-- 여기부터 시작입니다. -->
안녕하세요.
큰 아픔을 당하고 보니 세상이 달리 보이는것. 바로 이런것일까요. 이나라를
등지고 다른나라로 가고 싶다는것. 개판인 이 한국을 등지고 말입니다.
<font color=\"#00800\">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여래리 728번지
피해자 : 故 김태광 (47)
보호자 : 김지민(피해자와는 부자관계. 18세)
사망일 : 2001년 9월 2일 일요일 새벽 4시
<font color=\"#ff0000\"> 장소 : 마산 새성모병원
담당의 : 제2내과 김필호 과장 </font>
의료호보 제 1종 (생활보호대상자. 장애 1급)
</font>
저의 아버지;김태광(47)께서는 20여년간에 걸쳐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여러가지 병명들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만성 신부전증, 한쪽눈 실명, 심장질환, 고혈압, 기력의 저하 등 많은 아픔들을 가지고 투병생활을 해 오셨습니다. 투병 생활이라고 하기보다는 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모습들이었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럭저럭 거동도 하시고 인공혈액투석도 하시고 미약하나마 나머지 보이는 한쪽눈으로 어슴푸레하게 주위의 사람들과 사물도 보시고 일요일마다 교회도 나가시는 등 삶의불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4,5월에 갑작스럽게 나머지 한쪽눈의 시력저하와그와 함께 심리적으로 답답하게 느껴져 심한 우울증까지 걸리시는 등 너무 힘들고 주위의 보호자까지 힘들게 지냈습니다.
5분을 채 가만 앉아있지 못하셔서 이리저리 갑갑함을 표시하시고 종종 보호자 되시는 할머니를 부여잡고 \"어무이,죄송합니더. 이렇게 너무 힘들어서 못살겠습니다\"라고 우시며 때로 우울증이 너무 심할때는 어머니(이 글을 쓰는 저에게는 할머니) 앞에서 \"어머니, 넥타이 어딨습니꺼? 내 저기에 목 매달고 죽을란다\"라고 말 하시는 등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보호자를 한시도, 단 5분도 어디 다니지 못하도록 우울증과 신체의 갖가지 병고로 인해서 근 4개월간 그렇게 심한 모습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7월 말쯤(23,24일) 할머니의 간곡한 설득으로 마산 새성모병원(석영의료재단)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몇년전에 입원해 본 경험이 있는 병원이고 다른 병원은 거부하시기에 그곳으로 결정하시고 입원하였습니다.
처음 입원한 일주일간은 그전의 갑갑함을 표현하시며 주위의 동료환자들까지 포기할 정도로 그 증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간호사들의 적극적인 간호와 할머니의 설득, 그리고 차차 적응되어가는 병원 분위기에 아버지는 심리적으로,육체적으로 안정감을 찾으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의 4개월간은 기력이 거의 제로상태까지 떨어진 상태에 식사를 위해 수저를 제대로 들지 못하시고 입을 바로 다물 힘이 없어 침이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누워만 계시고 또 누워 계시면 갑갑증을 호소하시는 모습이었으나 병원에 입원하고 1주일, 2주일이 지나면서 적절한 간호로 기력을 회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양 신장이 기능을 다한 상태라서 혈액투석을 하십니다. 그래서 과거에 이곳 병원에서 혈액 투석을 해 본 연고가 있어 인공신장실의 간호사님과는 잘 알고 지냈습니다. 그 간호사분의 세심한 간호와 심리적으로 안정을 잘 시켜주셔서 아버지는 좋은 모습으로 차차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차광막이라는 약도 혈액투석이 끝난 후에 투여했는데 이 약을 투여하고 난 후에는 돌아가시는 이틀전에도 수저를 제대로 들지 못할 그 모습에서 혼자서 젓가락까지 집어 반찬을 고르시고, 대변을 보고 뒷처리를 못해 보호자가 일일히 해 드려야 했으나 8월 29일 수요일에는 스스로 용변의 뒷처리를 하시는 등 하나 둘씩 눈에 띄게 적극적으로 회복의 기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차광막이라는 약을 투여할 처음에는 투여되는 시간 30분을 못이겨 하셨으나 돌아가시는날 그 전날에도 차광막 주사를 맞는데 즐거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점차 자신이 나아가고 있다는데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문제의 모습이 일어난 날은 9월 1일이었습니다.
토요일은 인공신장실에서 혈액투석을 하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혈액투석량을 다른날과는 달리 좀 늘였습니다. 이유는 수혈을 두봉지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담당의는 수혈후에는 머리가 아픈것이 좀 있을것이라고 합니다. 말마따나 아버지는 병실로 내려가셔서 머리 아프신것을 호소하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간호사실에서 약을 받아서 먹이셨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난 후에도 계속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환자가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 그럴수도 있다고 했습니다.(참고로, 저희 할머니께서는 간호조무사 자격증도 가지고 계시고 보건소 공무원을 하셨습니다)할머니께서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아프긴 하겠지만 그럴수도 있다고 보고 계속 아버지 옆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추위를 느끼시며 덜덜덜 떠셨고 할머니께서는 간호사에게 가셔서 환자가 오한을 느끼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그럴수도 있으니 조금만 있어보시라 라는 응답을 듣고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말문을 열어 <font color=\"#000080\">\"어무이..추우니까 코에서 콧물이 나네..\"</font>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휴지로 코를 닦아보니 선홍색 피가 묻어나옵니다. 할머니는 놀랬지만 아버지가 알까봐 닦아 주시고 간호사실에 가셨습니다 <font color=\"#008080\">\"이거 피가 나옵니다. 담당의사선생님을 좀 불러주이소\"</font>라고 말씀하셨고 간호사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다시 아버지께로 오셔서 옆에 지켜 계시는데 이번에는 입에서 피가 배어 나옵니다. 상처가 있어서 피가 나는것도 아니고 안에서 피가 흘러 나옵니다. 말 그대로 아주 붉은, 진한 선홍색 피가 나온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font color=\"#008080\"> \'이거 무언가 심상치 않다\'</font>라고 생각하셔서 다시한번 간호사실에 가셔서 담당의사가 빨리 와서 상태를 봐 주기를 말했습니다. <font color=\"#ff0000\">간호사는 같은 말로 환자의 상태로 봐서 그럴수 있습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할뿐이었습니다. 의사에게 전화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연락을 하더라도 의사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영구가 떠나는 그 시간까지도 자신이 돌본 환자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주질 않았습니다.
밤 10시정도, 옆사람이 주시는 배 한조각을가지고 아버지께 드려 드시게 했습니다. 행여나 입안의 상처로 인해 피가 나는가 싶어서 배를 먹으면 입안의 피도 가시고 상처도 보일것 같아 아버지도 잘 씹어서 잘 드셨는데도 아픈것은 더해 가시고 머리는 더욱더 아파가고 이제는 말문을 닫고 \"아야,아야..\"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셨습니다. 입에서도 피가 난다고 했는데 간호사는 입술을 깨물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보지도 않고서. 초능력자인가요? </font>
한밤중까지 계속 아버지는 아프다고 하시고 할머니는 뜬눈으로 밤을 새시고 할머니는 <font color=\"#0000ff\">수시로 간호사실에 가셔서 담당의사가 없으면 당직의사라도 불러오라고 하였으나 간간이 와서 혈압을 체크하고 알수없는 진통제 등을 투여 하는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환자의 상태가 호전이 되는 의료행위는 전연 배제한채, 담당의사를 불러달라는 의견도, 정 아니면 당직의사를 불러달라는 의견도 묵살한채 과연 간호사가 의사에게 연락을 했는지, 아니면 연락을 했더라도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알고서나 처방을 했는지.</font> 대한의사협의회의 진단 진료시의 유의사항을 참고하더라도 환자의 주 증상만 듣고 진단함은 금물이요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더우기 머리가 아플수도 있다는 말은 했으나 그렇게 코와 입에서 진한 선홍색 피가 흘러넘치는 상황을 몇번이나 와서 봐 달라고 했으나 간호사는 말만 듣고 눈으로 보지도 않는 등 너무나도 무성의하고 불성실한, 그것도 거의 다 나아가는 환자. 내일모레면 퇴원할 기쁨이 있는 환자에게 이렇게 죽음만을 안겨다 주는 상황이 어디에 있을까요.
<font color=\"#ff0000\">아버지께서 반쯤 의식을 잃으실때 갑자기 그 큰 눈을 부릅뜨시고 할머니를 바라보셨다고합니다.</font> 아버지께서는 시각장애인이라 눈을 그렇게 크게 뜨시는 법이 없고 힘들고 아플때는 눈을 크게 뜨기 힘들 뿐 아니라 오히려 눈을 찡그리고 감는것이 일반적입니다. 새벽에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할머니를 바라보니 할머니는 얼마나 놀라셨겠습니까. 빨리 간호사에게 다짜고짜 따지니
간호사는 \"피곤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상황이 시작된지 족히 5,6시간이 넘은채. 얼마 안되는 20미터의 거리 그정도 밖에 안되는거리를 그제서야 산소 호흡기를 끌고서 간호사는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상황은 간호사가 처리하기에는 늦었습니다. <font color=\"#ff0000\">평소의 아버지 배는 부른 배가 아닌데 불러있고 배 안의 느낌은 비닐주머니에 물을 채워넣고 흔들면 느낄수 있는 그 느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배는 벌떡벌떡 뛰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숨을 쉬는 배가 아닙니다. 간호사는 그런 상황에서도 \"할머니, 동맥에 피가 흐르니까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font>
그렇지만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100보 양보해서 피가 흐른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벌떡벌떡 펌프처럼 부푸는 배가 있을까요. 그제서야 당직의사를 부르고 당직은 와서 의식을 거의 잃은, 아니 생명의 불이 거의 꺼진 아버지의 배를 두어번 눌러 보더니 바로 중환자실로 끌고 올라갔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병실에서 죽음을 거의 맞이한채로 중환자실로 올라 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당직의사는 잠시 나가시더니 병원장을 불러 왔습니다. 잠시후에 중환자실 밖에서 울고 계시던 할머니를 부르셨습니다. 할머니는 \"우리아들 깨어났습니꺼!\"라고 말하시며 들어가셨습니다.
그렇지만 원장의사는 아버지 산소 마스크를 벗기면서 <font color=\"#ff0000\">\"갔습니다\"</font> 라고 퉁명스레 말합니다.
병원장은 심장마비로 아버지께서 숨지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입안에는 내출혈로 인한 피가 한가득 고여 있었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심장마비를 조용히 가는것이나 수분내로 가는것이 일반적입니다. 주위의 간호사(저희 고모:미국거주) 에게 물어봐도 심장마비는 절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입관하기전에 시신을 확인하니 몇시간 후에는 시신이 파랗게 변해버렸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사망진단서에 기록된 사항은 직접사인도 아닌 중간 선행사인으로 \'말기 신부전\'이라고 합니다. 말기 신부전 환자가 입과 코에서 피를 토하면서 죽는 경우를 보지 못했고 더군다나 5,6시간전에 담당의, 아니 간호사나 당직의라도 와서 상황을 인지 했으면 기도를 확장해서 고인 피를 제거하고 응급치료를 했더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font color=\"#ff0000\">그 전날 아침까지만해도 씨익 웃으시면서 식사 잘 하신 분이었습니다. </font>
<font color=\"#0000ff\">의료진들에게 유가족, 아들로서 죽을때까지 추궁하고 싶은것은 진료태만에다가 의사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진단의 오진 가능성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고 또한 분명히 수혈 후에는 머리가 아플 수 있다고 하면서도 그런 가능성을 알면서, 그런 일이 일어났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출상하는 그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고 환자의 마지막을 보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상냥하던 의사가 할머니의 추궁에 한마디도 못하는, 환자 보호자에 대해서 설명의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을 기피한 그것. 원장이 말하는 사인과 담당의가 밝히는 사인이 다른것. 간호사에게 수차례, 열몇번이나 담당의나 당직의를 불러달라는 아주 기본적인 요청마저 무시한점. 환자를 보지 않고 독단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진단한 간호사로서의 범위를 벗어난 월권행위. 무응답,무반응으로 일관한 병원측의 태도로 인해 불안감을 가중시켜 환자를 죽음에 더 빨리 재촉한 모습들. </font>
100% 인재로 발생한 사고였다고 봅니다. 충분히 살피고 다만 몇시간전에라도 보았으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이렇게 방치하여 사망에까지 이른것은 병원의 기본적인 의무를 하지 못함에 있겠습니다. 게다가 의료보호환자라고 <font color=\"#ff0000\"><strong>힘 없고,돈 없다고 무시한 것들.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해버린 그들의 의사로서의 도덕적인 책임들.</strong></font> 과연 어디가서 보상 받을수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 했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었고 다른것 바라는것이 아니라 담당의 진실한 한마디였습니다. 그러나 담당의는 마지막까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진정으로 여러분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평생 하고싶은것, 아니 먹고싶은것. 아버지가 제일 밥을 잘 드실때가 흰 쌀밥에 물 말아서 김치를 겯들여 드시는것을 즐겨하셨는데 그렇게 드셔보신지가 20여년이 넘으셨고 고생고생만 하시다가 그저 가신것..너무나도 안타까운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작은 정성이 저희 가족에게는 큰 사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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