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들은 걸핏하면 서양 것은 덮어놓고 과학적이려니 짐작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과학적인 것은 더 우수하고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자면 과학이란 지난 수십 년 사이 서양에서 배워 들여온 셈이지, 우리들이 스스로 물리나 화학을 제대로 발달시켰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과학’이라거나 ‘과학적’, 또는 심지어 ‘논리적’ 이란 말만 들어도 지레 기가 죽어서 그것은 서양사람들의 전매특허거니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사건건 우리들의 전통적인 어느 문화가 서양의 그것과 다를 때는 무조건 우리 것은 ‘비과학적’ 이라고 매도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의 태도야말로 비과학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근대 서양에서 크게 일어나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들의 문화유산 가운데에도 서양 것보다도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의 대표적인 것 하나를 고르라면 바로 음력을 들 수 있다. 우리들은 음력이란 비과학적 내지는 미신적이고 양력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 단정하고 살고 있다.
->글의 가장 앞 부분으로 ‘양력 ․ 음력’에 관한 주제를 이끌어 내고 있다. 특히 ‘과학적’, ‘비과학적’ 이라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주로 다루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자면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잘못 읽다보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고정관념에 빠져있는 것처럼 들린다. 사람들이 우리의 것은 비과학적이라 단정짓고, 서양 것만을 과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다지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글 자체가 설명문인데도 불구하고 약간은 극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은 글의 목적에 있어서 어긋날뿐더러 글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그리고 글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이글은 설명문이라기 보다는 논설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마치 음력은 좋고 양력은 좋은 것처럼 글을 쓰고 있다.) 차라리 사람들의 인식을 소개하기 보다는 다른 내용으로 대체를 했으면 한다.
바로 이 생각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이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정반대로 서양사람들이 발달시켜 지금 전세계가 쓰고 있는 양력은 서양의 세속적인 역사로 오염된 불합리한 역법인 데 반해서, 동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음력이야말로 순전히 과학적인 역법이어서 아무런 모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글의 흐름 자체가 이 생각에 중심을 두고 쓴 것 같다. 양력의 바탕이 되는 세속적인 역사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며, 음력이 과학적인 역법이란 것은 어떤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글 전체를 살펴보면 그다지 그 이유가 될만한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아무런 모순이 없다’ 라는 말을 처음부터 쓸 만큼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는지 의심스러워 하면서 글을 읽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는 흑백논리에 빠지게 된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필자가 음력설을 우리의 설날로 다시 복권시키려고 힘쓰고, 그리고 5년전부터 우리가 설날을 도로 찾게 된 것은 그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명절을 되찾자라는 감상적인 동기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그릇 생각하고 있는 편견을 물리치자는데에 더 큰 뜻이 있다. 우리는 양력과 음력만이 아니라 그 밖의 많은 경우 우리들 자신의 전통 속에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되찾아 우리 후손들에게 계승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글 전체를 읽으면서 여러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했지만, 이 부분에서 글의 목적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탁월했다고 생각이 든다. 단지 대상을 비교하는 설명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무엇인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는 것은 좀 더 흥미를 갖게 하는 행위이다.
<양력의 비합리적 모순>
얼핏 보기에 양력이란 아주 잘 맞는 달력이어서 대단히 합리적이거니 생각하기가 쉽다. ‘잘 맞는다’는 점에서는 이 평가에 조금도 잘못이 없다. 해마다 같은 날에는 그만큼 덥거나 추워서 누가 보기에도 계절에 딱딱 맞는 역법이 양력이란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하자면 음력의 날짜는 꼭 계절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대강 한 달쯤은 왔다갔다 하는 꼴로 보이는 것이 음력이기 때문이다. 음력의 날짜 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양력을 더 과학적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서문에 있어도 좋았을 법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사람들의 인식과는 반대로 글을 전개할 것이라고 짐작 할 수 있다. 그리고 비교하는 내용에 있어서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내용으로 글을 전개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깨우쳐 주려고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양력의 날짜가 계절과 잘 맞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양력은 바로 그것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역법이기 때문이다. 양력은 달의 운동은 완전히 무시한 채 해의 운동만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역법이다. 태양은 여름에는 머리 위에 높이 떴다가 겨울에는 저 아래로 떨어진다. 정오에 태양의 그림자를 재 보면 그림자가 가장 길 때가 동지이고, 가장 짧을 때가 하지가 된다. 그리고 하지에서 다음해의 하지까지 혹은 동지에서 다음해의 동지까지가 1년이 된다. 태양운동으로 따지는 1년이란 대강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된다.
그런데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이고, 한 달의 길이는 달의 운동을 가지고 따질 양이면 29일 반쯤이 된다. 달력의 발달은 바로 이 복잡한 한 해 ․ 한 달 ․ 하루 사이의 시간적 차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역법이 나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력은 바로 한 달의 길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발전되어 온 역법이다.
->양력에 대한 개략적 설명이다. 여기에서 필자의 의견 부분을 빼자면 ‘지정’의 설명 방법이 쓰인다. ‘지정’ 이란 사물의 인지되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언급하는 것이다. 대상을 지적하여 그것이 지닌 내적 정보까지를 설명해 주는 방법이다. 그래서 다른 것과의 차별성을 드러내 밝히려고 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양력을 처음 만들어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들의 양력이란 30일짜리 한 달을 12번 두고 해마다 연초 5일을 축제일로 하여 1년의 길이를 정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이렇게 따지면 1년의 길이는 365일로 딱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1년의 실제 길이에서 거의 6시간을 무시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6시간이 자꾸 모이면 나중에는 아예 계절이 바뀌게도 된다. 예를 들면 봄에 죽은 사람의 제사를 대강 360년 지나면 겨울에 지내게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 이 모순을 고쳐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였다. 그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曆)’이라 불리는 이 역법은 4년마다 무조건 하루씩을 더 넣어 이 모순을 해결했다.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으로 잡은 셈이다. 몇 백 년 동안에는 그리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1년 길이를 실제보다 11분 이상 길게 잡은 셈이어서 1천 년 이상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역법을 고치기로 결정했다. 고치는 기준으로는 기원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에는 춘분 날짜가 3월 21일이었는데, 1582년의 춘분은 3월 11일이었으므로 이듬해인 1583년부터는 춘분이 다시 3월 21일이 되도록 고쳐 정한 것이다. 교황청이 춘분 날짜에 관심을 가진 것은 기독교 최대의 명절인 부활절이 매년 비슷한 날짜에 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부활절은 춘분을 지나서 처음으로 오는 만월(滿月) 다음의 첫 일요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기독교 최대의 명절도 순전한 양력만으로는 정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만월이란 다름 아닌 음력 15일을 말하기 때문인데, 양력만으로는 달 모양을 알 길이 없는 까닭이다. 여하튼 교황청은 그해 10월 4일 다음날을 10월 15일이라고 정함으로써, 10일을 건너뛰어 다음해 춘분을 3월 21일로 바꿀 수가 있었다. 이것이 소위 ‘그레고리력’이다.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은 그 때까지 써 오던 ‘율리우스력’에서 윤달 넣는 방법을 약간 수정하여 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역법을 만든 것이었다. 즉 4년마다 한 번씩 윤달을 넣던 방식을 고쳐서 서기가 4로 나눠질 때에는 윤달을 넣되 100으로 나눠질 때에는 윤달을 넣지 않고 평년으로 하고, 다시 400으로 나눠질 때는 윤년으로 한다는 규칙이다. 예를 들자면 1988 ․ 1992 ․ 1996년은 4로 나눠지니까 윤년이지만, 1900 ․ 2100 ․ 2200년 등은 100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평년이 되고, 2000 ․ 2400년 등은 400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다시 윤년이 된다. 앞으로 몇 만 년을 써도 계절과 어긋나지 않을 만큼 오늘의 양력은 완벽한 것이 된 셈이다.
->이 부분은 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객관적인 내용을 제시한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달력 ⇒ 율리우스력 ⇒ 그레고리력 순서로 양력의 발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양력을 사용하면서 모순되는 점이 나오면 고치고 하면서 양력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서문에서 양력은 세속적인 역사에서 오염되었다고 한 언급은 이부분에서부터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주장하는 만큼의 극단적인 부분은 없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꾸고 더욱 발전 시켜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마지막 문장을 보자면 필자가 양력이 장점이 있다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처럼 태양운동을 날짜와 맞게 만든 점에서는 아무 탓할 것이 없다. 그러나 양력은 다른 면에서는 모순투성이다. 우선 영어나 그 밖의 서양 언어로 표시된 달 이름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어로는 9월부터의 달 이름이 각기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인데 이 달들의 어원을 따져 본다면 각기 일곱번째 달, 여덟번째 달, 아홉번째 달, 열번째 달이 된다. 원래 로마 시대의 연말은 지금의 2월(February)이었는데, 그것이 슬그머니 두 달 앞당겨지면서 오늘의 모양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덕택에 연말에 하루가 늘었다 줄었다 해야 할 윤년의 하루가 지금은 2월 말에 붙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로 더욱 못마땅한 이름은 아마 7월(July)와 8월(August)일 것 같다. 원래 이 이름은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인데, 이 달에 그들의 생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왕 기념하는 바에 더 길게 하기 위해서 30일이던 한 달을 하루 더 연말에서 가져다가 31일로 만들어 놓았다. 7, 8월이 연속 31일이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결국 달마다 길이가 불규칙하게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여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려워진 셈이고, 이걸 외우기 위해 학생들은 손등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 달 이름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객관적인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다지 언급할게 없다는 얘기)
우리 동양사람들에게는 로마의 황제를 기념할 이유가 없다. 달 이름을 말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외워 줄 필요란 더구나 없는 일이다. 이왕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달력이라면 서양 사람 이름만 달 이름에 쓸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옛 인물 가운데 한 명쯤도 달 이름으로 써주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가? 게다가 한 달의 길이가 28일부터 31일까지 불규칙적으로 변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1월, 3월, 5월, 7월 등 홀수 달을 30일씩으로 하고 2월, 4월, 6월 등 짝수 달은 31일로 하되 12월은 평년 30일, 윤년 31일로 하면 된다.
-> 필자의 부정적 사고가 약간 드러나 있다. 단지 로마의 황제를 기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양력의 모순을 올바르게 고쳤기 때문에 기념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옛 인물 가운데 한 사람 쯤 달 이름을 써주자는 내용도 억지의 주장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모든 나라 사람의 한 사람 쯤은 다 들어가야 된다. 필자는 설명문에 혼자만의 생각을 피력하면서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양력의 이런 모순을 없애고 세계가 함께 쓸 수 있는 양력을 만들려는 운동이 1954년 유엔에서 논의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찬성하는 나라와 반대하는 나라는 똑같이 20개 국이었고 반대국 가운데에는 미국 ․ 영국 ․ 프랑스 ․ 독일이 모두 들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동양사람들은 고치자 했고 서양사람들은 고치기를 반대했다. 서양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역사이며 전통이니 당연한 일이겠다. 우리 나라는 유엔 가입국도 아니었지만, 당시 이 운동을 벌이던 단체에서 우리의 뜻을 물어 본 일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양력을 고치자는 의견을 낸 일이 있다. 실현되지 못한 일이긴 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 밑줄 친 부분은 필자가 간단하게 요약하게 설명하려는 의도였으나 오히려 모순이 된다.
몇 개국만이 찬성하고 반대했다고 그것을 마치 서양사람, 동양 사람들이 모두 그런 것인 양 언급한 것이다.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뜻은 좋으나 문제가 발견된다면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게다가 양력 1월 1일이란 정말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그런 날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지금까지 양력 1월 1일을 ‘설날’이라고까지 높여 3일간의 공휴일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의 진짜 설날은 음력이라고 없애 버린 채…….
양력 1월 1일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양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활절 계산을 하기 위해 춘분을 고정시켜 놓고 그에 따라 저절로 생긴 날일 따름이다. 당연히 양력 1월 1일에는 해와 달의 어느 것도 무슨 새로운 모양을 보여 주지 않는다.
-> 다짜고짜 양력 1월 1일은 아무 쓸 짝에 없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이없는 사실이다.(가장 황당한 부분..) 필자가 우리 문화(음력)을 아끼고 계승해야한다는 뜻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렇게 억지 주장은 정말 문제가 있다. 물론 뒷부분에 잠깐 언급이 나오긴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다지 타당한 주장이 될 수 없다. 부활절이라는 것 자체가 서양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날이고 그것에 맞추어서 일년이 시작되었다면 그 날 또한 한 해가 시작된다는 중요한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력 1월 1일은 어떠하다는 언급도 없이 이렇게 비판하는 것 조차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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