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문 2-9
음력, 양력의 과학적 비교
우리들은 걸핏하면 서양 것은 덮어놓고 과학적이려니 짐작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과학적인 것은 더 우수하고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자면 과학이란 지난 수십 년 사이 서양에서 배워 들여온 셈이지, 우리들이 스스로 물리나 화학을 제대로 발달시켰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과학’이라거나 ‘과학적’, 또는 심지어 ‘논리적’ 이란 말만 들어도 지레 기가 죽어서 그것은 서양사람들의 전매특허거니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는 사사건건 우리들의 전통적인 어느 문화가 서양의 그것과 다를 때는 무조건 우리 것은 ‘비과학적’ 이라고 매도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의 태도야말로 비과학적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근대 서양에서 크게 일어나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우리들의 문화유산 가운데에도 서양 것보다도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런 경우의 대표적인 것 하나를 고르라면 바로 음력을 들 수 있다. 우리들은 음력이란 비과학적 내지는 미신적이고 양력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 단정하고 살고 있다.
바로 이 생각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의 하나이다. 일반적인 생각과는 정반대로 서양사람들이 발달시켜 지금 전세계가 쓰고 있는 양력은 서양의 세속적인 역사로 오염된 불합리한 역법인 데 반해서, 동양인들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음력이야말로 순전히 과학적인 역법이어서 아무런 모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필자가 음력설을 우리의 설날로 다시 복권시키려고 힘쓰고, 그리고 5년전부터 우리가 설날을 도로 찾게 된 것은 그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명절을 되찾자라는 감상적인 동기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 그릇 생각하고 있는 편견을 물리치자는데에 더 큰 뜻이 있다. 우리는 양력과 음력만이 아니라 그 밖의 많은 경우 우리들 자신의 전통 속에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되찾아 우리 후손들에게 계승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1. 양력의 비합리적인 모순
얼핏 보기에 양력이란 아주 잘 맞는 달력이어서 대단히 합리적이거니 생각하기가 쉽다. ‘잘 맞는다’는 점에서는 이 평가에 조금도 잘못이 없다. 해마다 같은 날에는 그만큼 덥거나 추워서 누가 보기에도 계절에 딱딱 맞는 역법이 양력이란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하자면 음력의 날짜는 꼭 계절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대강 한 달쯤은 왔다갔다 하는 꼴로 보이는 것이 음력이기 때문이다. 음력의 날짜 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양력을 더 과학적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양력의 날짜가 계절과 잘 맞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양력은 바로 그것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역법이기 때문이다. 양력은 달의 운동은 완전히 무시한 채 해의 운동만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역법이다. 태양은 여름에는 머리 위에 높이 떴다가 겨울에는 저 아래로 떨어진다. 정오에 태양의 그림자를 재 보면 그림자가 가장 길 때가 동지이고, 가장 짧을 때가 하지가 된다. 그리고 하지에서 다음해의 하지까지 혹은 동지에서 다음해의 동지까지가 1년이 된다. 태양운동으로 따지는 1년이란 대강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된다.
그런데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이고, 한 달의 길이는 달의 운동을 가지고 따질 양이면 29일 반쯤이 된다. 달력의 발달은 바로 이 복잡한 한 해 ∙ 한 달 ∙ 하루 사이의 시간적 차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역법이 나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양력은 바로 한 달의 길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발전되어 온 역법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양력을 처음 만들어 썼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들의 양력이란 30일짜리 한 달을 12번 두고 해마다 연초 5일을 축제일로 하여 1년의 길이를 정하는 그런 방식이었다. 이렇게 따지면 1년의 길이는 365일로 딱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1년의 실제 길이에서 거의 6시간을 무시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6시간이 자꾸 모이면 나중에는 아예 계절이 바뀌게도 된다. 예를 들면 봄에 죽은 사람의 제사를 대강 360년 지나면 겨울에 지내게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 이 모순을 고쳐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였다. 그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曆)’이라 불리는 이 역법은 4년마다 무조건 하루씩을 더 넣어 이 모순을 해결했다.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으로 잡은 셈이다. 몇 백 년 동안에는 그리 큰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이 방법은 1년 길이를 실제보다 11분 이상 길게 잡은 셈이어서 1천 년 이상이 지나면서 그 차이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역법을 고치기로 결정했다. 고치는 기준으로는 기원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에는 춘분 날짜가 3월 21일이었는데, 1582년의 춘분은 3월 11일이었으므로 이듬해인 1583년부터는 춘분이 다시 3월 21일이 되도록 고쳐 정한 것이다. 교황청이 춘분 날짜에 관심을 가진 것은 기독교 최대의 명절인 부활절이 매년 비슷한 날짜에 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부활절은 춘분을 지나서 처음으로 오는 만월(滿月) 다음의 첫 일요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기독교 최대의 명절도 순전한 양력만으로는 정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만월이란 다름 아닌 음력 15일을 말하기 때문인데, 양력만으로는 달 모양을 알 길이 없는 까닭이다. 여하튼 교황청은 그해 10월 4일 다음날을 10월 15일이라고 정함으로써, 10일을 건너뛰어 다음해 춘분을 3월 21일로 바꿀 수가 있었다. 이것이 소위 ‘그레고리력’이다.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은 그 때까지 써 오던 ‘율리우스력’에서 윤달 넣는 방법을 약간 수정하여 더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역법을 만든 것이었다. 즉 4년마다 한 번씩 윤달을 넣던 방식을 고쳐서 서기가 4로 나눠질 때에는 윤달을 넣되 100으로 나눠질 때에는 윤달을 넣지 않고 평년으로 하고, 다시 400으로 나눠질 때는 윤년으로 한다는 규칙이다. 예를 들자면 1988 ∙ 1992 ∙ 1996년은 4로 나눠지니까 윤년이지만, 1900 ∙ 2100 ∙ 2200년 등은 100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평년이 되고, 2000 ∙ 2400년 등은 400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다시 윤년이 된다. 앞으로 몇 만 년을 써도 계절과 어긋나지 않을 만큼 오늘의 양력은 완벽한 것이된 셈이다.
이처럼 태양운동을 날짜와 맞게 만든 점에서는 아무 탓할 것이 없다. 그러나 양력은 다른 면에서는 모순투성이다. 우선 영어나 그 밖의 서양 언어로 표시된 달 이름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어로는 9월부터의 달 이름이 각기 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인데 이 달들의 어원을 따져 본다면 각기 일곱번째 달, 여덟번째 달, 아홉번째 달, 열번째 달이 된다. 원래 로마 시대의 연말은 지금의 2월(February)이었는데, 그것이 슬그머니 두 달 앞당겨지면서 오늘의 모양이 되고 만 것이다. 그 덕택에 연말에 하루가 늘었다 줄었다 해야 할 윤년의 하루가 지금은 2월 말에 붙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로 더욱 못마땅한 이름은 아마 7월(July)와 8월(August)일 것 같다. 원래 이 이름은 로마의 황제 율리우스와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인데, 이 달에 그들의 생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왕 기념하는 바에 더 길게 하기 위해서 30일이던 한 달을 하루 더 연말에서 가져다가 31일로 만들어 놓았다. 7, 8월이 연속 31일이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결국 달마다 길이가 불규칙하게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여 사람들이 기억하기 어려워진 셈이고, 이걸 외우기 위해 학생들은 손등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우리 동양사람들에게는 로마의 황제를 기념할 이유가 없다. 달 이름을 말할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외워 줄 필요란 더구나 없는 일이다. 이왕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달력이라면 서양 사람 이름만 달 이름에 쓸 것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옛 인물 가운데 한 명쯤도 달 이름으로 써주는 것이 공평하지 않은가? 게다가 한 달의 길이가 28일부터 31일까지 불규칙적으로 변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1월, 3월, 5월, 7월 등 홀수 달을 30일씩으로 하고 2월, 4월, 6월 등 짝수 달은 31일로 하되 12월은 평년 30일, 윤년 31일로 하면 된다.
실제로 양력의 이런 모순을 없애고 세계가 함께 쓸 수 있는 양력을 만들려는 운동이 1954년 유엔에서 논의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에 찬성하는 나라와 반대하는 나라는 똑같이 20개 국이었고 반대국 가운데에는 미국 ∙ 영국 ∙ 프랑스 ∙ 독일이 모두 들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동양사람들은 고치자 했고 서양사람들은 고치기를 반대했다. 서양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의 역사이며 전통이니 당연한 일이겠다. 우리 나라는 유엔 가입국도 아니었지만, 당시 이 운동을 벌이던 단체에서 우리의 뜻을 물어 본 일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양력을 고치자는 의견을 낸 일이 있다. 실현되지 못한 일이긴 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양력 1월 1일이란 정말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그런 날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지금까지 양력 1월 1일을 ‘설날’이라고까지 높여 3일간의 공휴일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의 진짜 설날은 음력이라고 없애 버린 채…….
양력 1월 1일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양력에서 가장 중요한 부활절 계산을 하기 위해 춘분을 고정시켜 놓고 그에 따라 저절로 생긴 날일 따름이다. 당연히 양력 1월 1일에는 해와 달의 어느 것도 무슨 새로운 모양을 보여 주지 않는다.
2. 음력의 합리성과 과학성
역법이란 해와 달의 자연의 변화로부터 어떤 계기를 잡아, 인간의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는 뜻에서, 어느 시각을 잡아 새해의 시작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와 달이 어떤 특수한 시작점에 있을 때를 잡아 새해의 시작이라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런 뜻에서 양력 1월 1일은 새해의 시작으로는 낙제점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음력은 이와 정확히 반대다. 서양의 양력이 온갖 서양사람들의 문화적인 때가 묻어 있는 것과는 달리 동양의 음력에는 조금도 때가 묻어 있지 않다. 서양사람들의 이름이 달 이름에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음력에서는 달 이름에 사람 이름을 붙여 놓는 일이 없다. 음력에서는 1월, 2월, 3월, 4월 등으로 차례대로 숫자를 붙여 달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고, 혹시 다른 이름을 쓴다 해도 ‘꽃 피는 달’, ‘새 우는 달’ 등의 자연현상과 맞춰 운치 있는 이름을 만들었을 뿐, 어느 인물의 이름도 달 이름에 붙인 적이 없다.
또 음력에서는 한 달의 날짜수가 29일과 30일로 불규칙적으로 바뀌지만, 그 까닭은 순전히 자연현상에 달려 있는 것이지, 어느 사람의 생월이라 하여 그 달이 길어진 일이 없다. 음력에서는 달마다 15일을 보름[望]이라 하여 달이 가장 둥글게 뜨는 날로 맞춰 놓았다. 그렇게 되면 초하루[朔]는 저절로 결정되고 그 전 달의 크기가 29일이 될지 30일이 될지도 그에 따라 저절로 결정될 뿐이다. 사람들의 뜻대로 29일이나 30일이 되는 일이란 없다. 황제의 생월이라고 30일짜리를 31일로 늘려 놓는 서양의 양력과 자연의 리듬에 따라 저절로 한 달의 길이가 결정되는 우리의 음력과 어느 쪽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지는 따져 볼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왜 음력은 날짜가 계절과 잘 맞지 않는 걸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원래 음력은 날짜를 앞에 말한 것처럼 달 모양의 변화에 맞게 만든 것이지 계절에 맞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춥고 더운 계절의 변화란 태양의 운동으로 좌우된다. 음력에서는 이런 태양운동을 24절기(節氣)로 나타내고 있다. ‘입춘・우수・경칩・춘분……’ 하며 이어지는 24절기란 바로 태양운동을 24등분하여 붙여 놓은 이름이다. 당연히 24절기는 각각 계절에 정확히 상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음력 속에 들어 있는 양력인 셈이 된다.
우리는 그저 음력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음력 속에는 양력 성분이 24절기로 들어 있다. 그래서 과학사에서는 동양의 음력을 태음태양력이라 부른다. 달의 운동을 날짜로 나타내며, 태양의 운동은 24절기로 나타냄으로써 해와 달을 함께 나타낸 훌륭한 역법인 것이다.
음력 날짜를 가지고 계절과 맞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것은 스스로 바보임을 드러낼 따름이다. 우리 조상들은 계절은 절기로 알고 날짜로는 달의 크기를 알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조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사람들에게는 달 모양을 그날그날 알고 지낸다는 것이 여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또 달의 모양은 밤의 밝기만 결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조수의 간만도 좌우한다.
음력을 미신적이라 지레 짐작하는 사람들은 토정비결이나 사주 등 미신적인 것이 모두 양력 아닌 음력으로 계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말하는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앞뒤를 뒤집어 잘못 생각한 일이다. 만약 우리가 음력 아닌 양력을 쓰고 살았더라면 당연히 양력으로 계산하는 미신들이 발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해둔 것처럼 양력 1월 1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이다. 그러나 음력 1월 1일은 달이 새로 생겨나는 그런 날이다. 이것만으로도 음력 1월 1일이 훨씬 자연현상에 상응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원래 동양에서 음력이 발달할 때에는 지금과는 좀 달리 새해의 시작을 해와 달이 모두 새롭게 되는 그런 때를 골라 설로 만들려는 의도가 강했던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동지 정월’을 지켰던 것이 뒤에 지금과 같이 입춘 정월로 바뀌었음을 우리는 역사에서 읽어 낼 수가 있다. 동지 정월이란 동지가 든 달을 첫달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경우 동지가 그 달의 첫날이 될 경우는 동짓날이 그대로 설날이 된다. 그러면 그 날에는 달도 새로 생겨나고 해도 새로 생겨난다고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그럴듯한 새해가 될까?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아야 19년에 한 번이나 일어날까 말까 하고, 대개의 경우는 설이 지난 한참 뒤에 동짓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추위는 온통 동지가 지난 다음에 오는 법이니 설을 지나고도 한 달 후 혹은 두 달 동안 한참 추위가 찾아올 것이다. 설은 새해의 시작을 뜻하는데 소한・대한의 추위가 모두 설 지난 당므에 와서야 기분이 말이 아닐 터이다. 그래서 약 2천 년 전에 동양에서는 새해의 시작을 동지에서 입춘 쪽으로 옮겨 놓았다.
그것이 과학적이 아니라 하여 다시 동지 정월로 설날을 옮긴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95년부터 700년까지에 있었던 일이다. 또 동지를 설로 하려던 생각은 지금도 우리들이 동짓날 팥죽 속에 새알심 수를 따져 나이 먹는 것을 말하는 전설 속에 숨겨져 남아 있다. 또 12달을 12지에 맞춰 부를 때 우리는 지금도 자월(子月)을 동짓달로 잡고 있다. 원래 자월이 1년의 시작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설날이 입춘 정월이라 하여 설날이 입춘이 든 달의 초하루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입춘 정월이라기보다는 ‘우수 정월’이라는 편이 더 정확하지만, ‘봄 기운이 들 때’라는 뜻을 강조하여 ‘입춘 정월’로 부를 뿐이다. 원래 24절기는 정확히 말하자면 12중기(中氣)와 12절기로 되어 서로 번갈아 나오게 되어 있다. 우수∙춘분∙곡우∙소만 등은 중기이고, 입춘∙경칩∙청명 등은 절기가 된다. 그런데 달 이름을 정해 주는 것은 중기이지 절기가 아니다. 음력에서 윤월을 넣는 방법도 바로 이 원칙에 따라 순전히 과학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즉 14일쯤에 절기만 들어 있고 중기가 없는 그런 달은 그 전달의 윤달이 되는 것이다.
이상 여러 가지 설명이 어쩌면 너무 복잡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요컨대 양력은 계절을 맞추는 데에는 아주 정확하지만 여러 가지 서양문화의 찌꺼기를 지니고 있어서, 우리가 그대로 쓰기에는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에 반하여 우리들의 전통적 음력은 음력의 날짜가 계절과 잘 맞지 않는다고 탓하는 사람들이 생기지만, 계절을 맞추기 위해서 양력 성분인 24절기가 따로 들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음력에는 동양사람들의 아무런 문화적 찌꺼기도 붙어 있지 않다. 음력은 순전히 과학적인 역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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